안경사의 깨달음

학력(學歷)과 학력(學力)

아이아이안경 2010. 9. 1. 11:40

학력이란 무엇일까요?

 

어제 새롭게 출시된다는 안경렌즈 브랜드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안경원에 오셔서 자사의 안경렌즈에 대해 설명을 하고 가셨습니다. 처음에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설명이 끝나갈 무렵 그 렌즈에 대해서 제가 몇 가지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을 물었습니다. 다른 제품과 차별화되지 않는 일반적인 설명은 빼고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물은 것이죠. 대개 이런 질문을 하면 안경렌즈 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무척 당황합니다. 몇 가지를 질문한 후에 딱히 대답을 얻지 못한 상황이 되니까 이제는 반대로 제가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자주 일어나는데 꼭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혹시 석사과정을 다니시거나 나오셨나요?"

"아뇨. 왜요?"

"아니, 공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서요."

"저는 그런 과정에 관심이 없어요."

"그럼 학사만 나오시고 계속 혼자 공부를 하셨나 보네요."

"뭐 예전에 2년제 전문대 나온 것도 학사라고 한다면 그렇지만 그런 것과 공부하는 것은 상관 없어요. 그냥 자기 일인데 당연히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뭐 대충 이런 식의 대화로 이어지다가 끝납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학교 출신과 학교 출신이 아닌 안경사를 구분하는 것이며, 안경사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의 공부를 마치 학력(學歷:학교를 다닌 경력)에 비유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육 또한 남에게 듣고 배우는 교육이 있고 남이 내놓았던 지식(또는 정보)를 가지고 혼자 공부하며 깨우치는 과정(독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전자는 쉽게 배우는 것 같지만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담아내는 그물(이해)이 촘촘하지 못해서 쉽게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분명히 배웠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려면 또다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그러니 어떤 교육과정(학교 포함)을 다녔거나 이수했다고 안경사로써의 능력이 그냥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후자는 혼자서 무척 어렵고 긴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하고 혼자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때때로 자신이 잘못 이해했었다는 것은 한참이 지난 후에 깨닫는 경우도 많습니다. 뭔가 하나를 제대로 깨닫는데 걸리는 시간이 긴 대신에 그물이 겹치고 겹쳐서 나중에는 촘촘해집니다. 물론 중간에 잘못된 사고를 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물이 찢어져서 아예 자신만의 잘못된 이해가 고착화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만 어느 한 가지 정보에 매몰되지 않고 폭넓게 공부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자 확실한 공부가 됩니다. 

 

전자 또는 후자, 둘 중 어떤 과정을 거쳤더라도 안경사로써 중요한 것은  학력(學歷)이 아니라 학력(學力:교육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기술 따위의 능력. 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응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뜻함)이 됩니다.

 

학력(學力)은 마치 내공처럼 안으로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무슨 자격증이나 이수증, 그리고 학위증처럼 남에게 쉽게 보여줄 수는 없지만 내적인 삶을 깊고 퐁요롭게 합니다. 그래서 학력(學歷)이 아닌 학력(學力)을 쌓은 안경사들이 많이지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안경사라는 것에 자신감을 갖기를 바랍니다. 비록 학교 출신 안경사가 아니더라도, 그래서 학력(學歷)은 중졸이더라도 실제 학력(學力)은 세계 어느 곳의 학위보다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모든 호칭에 앞서 그 사람의 프로필에 안경사를 맨 앞에 두고 그 뒤는 신경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강의를 부탁받아서 강단에 서기 전에 항상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프로필을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입니다. 그럼 저는 그냥 안경사라고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럼 소개하실 분 또는 제게 강의를 부탁하신 업체에 계신 분의 얼굴이 대개 어두워지거나 당황한 표정을 보입니다. 그게 다냐? 뭐 이런 것이죠. 예전에 2년제 안경광학과를 졸업해서 안경사가 된 것 하나만을 학력(學歷)으로 소개하거나 윗사람들에게 보고하기가 곤혹스운 것이죠. 저는 제가 안경사라는 것과 안경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부하는 것이 제 학력(學力)이란 점에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데 오히려 저를 소개할 분들이 더 부끄러워하신다니요. 정작 부끄러워야 할 것은 부족한 학력(學歷)이 아니라 부족한 학력(學力)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안경사가 자신이 안경사인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안경사로써 자존감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안경사로써 안경사의 사회적 역할을 더 폭넓게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자신이 안경사임을 프로필에서 빼는 것 또한 자존감에 상처를 남깁니다. 새로 나온 시지각 관련 책자를 번역하신 분 중 한 분은 안경사입니다. 그러나 프로필에는 1~2주 동안 호주에 잠시 연수를 다녀온 내용까지도 올렸지만 정작 안경사(사실 이것만이 유일한 정규교육과정과 시험을 통해서 취득한 자격임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은 없었다는 점에 매우 실망했습니다. 저는 외국에서 학위를 받으신 분들이 어떤 지면이나 강단에서 소개될 때 검안학 석사, 또는 박사라는 표현에 앞서 안경사라는 점을 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지만 한국에서는 안경사가 외국의 어떤 시각 전문가와도 같은 위치에서 경쟁하거나 그런 학력(學力)을 획득하고자 노력하는 전문가 집단이란 인식이 우리 안경사 스스로에게도 생깁니다.

 

학교 출신들이 많아지면서 학교 출신들 사이에서도 소위 학력(學歷)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안경사들의 학력(學歷)이 높고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을 소홀히 생각하면 안경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안경사의 전문성을 호소하며 어떤 권리를 주장하기 힏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밖에서 안경사라는 집단을 봤을 때는 우리가 하는 행태와 우리가 가진 학력(學歷)이 평가기준이 되겠죠. 그러니 제가 학력(學歷)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적어도 안경사 내부 또는 예비 안경사와 안경사를 가르치는 교육(학교 포함)에서는 모자란 학력(學歷)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모자란 학력(學力)을 부끄러워하며 노력해야지만 비로소 두 학력의 균형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우리 안경사 스스로 쌓아야할 학력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글을 짤막하게 쓸 요량으로 시작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까 무척 장문이 되었습니다. 글이 길어지는 것도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지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혹시 끝까지 읽어 주셨다면 감사합니다.